이번 대추리 사태는 600여일간의 긴 시위와 민군충돌 등의 선정적인 뉴스거리나 반미와 친미 노선의 대결이기 이전에, 본질적으로 이런 ‘근대국가관’을 우리 삶의 화두로 던져놓았다는 점에서 한번쯤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의견수렴이라는 과정을 거쳐야하는 민주주의국가는 크면 클수록 그 효율성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나라들이 민주주의를 채택하는 것은 민주주의적 형평성과 합리성이 보장하는 개개인의 권리가 국가의 효율성보다 중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런 효율성의 저하는 일단은 대의민주주의 혹은 공화정을 통해 극복을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갑,을,병 세사람이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 지정 좌석제가 아니라 선착순 좌석제인데 극장에 가보니 자리가 빼곡히 찬 가운데 딱 세자리가 남아있다. 그런데 이 세자리가 붙어 있는 게 아니라, 두자리가 비어 있고 그 옆에 한자리에 사람 정이 앉아 있고, 그 반대쪽으로 한자리가 더 비어있다. 이때 이 세삼이 나란히 앉아서 영화를 보고 싶다고 해서, 갑,을,병 세사람은 머릿수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정에게 한자리 옮겨 앉으라고 무작정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일 뿐만 아니라,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고 정을 덜렁 들어 옆자리로 옮길 수는 더더욱 없는 노릇이다.
정에게는 선착순 좌석제에 의해 자신이 선택한 자리에 누구보다 우선하는 권리를 갖는다. 갑,을,병 세사람은 이 권리를 자신들에게 양도해줄 것을 정중히 부탁할 수 있지만, 정이 그 부탁에 반드시 응해야 한다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정이 이 부탁에 응하지 않을 경우, 정이 부탁에 응하는 것이 왜 보다 합리적인지ㅡ정에게 실질적 피해는 없지만 갑,을,병에게는 실질적 이득이 있다는 사실ㅡ를 납득시키려는 노력을 할 수 있을 뿐, 정이 자신의 권리를 양도하기 전까지는 어떤 이유로도 갑,을,병에게 정이 선택한 자리에 대한 권리가 생기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수의 행복이 소수의 권리에 무조건적으로 우선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수의 행복도 소수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 때에만 인정받을 수 있다.
조금 더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천명의 사람을 태운 배가 어떤 이유론가 가라앉기 시작했는데 사람 한사람 정도의 무게만 덜어내면 가라앉는 걸 멈출 수 있다고 해보자. 이때 승객 중 한명이 나머지 999명을 위해 자기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돼 있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럴 각오가 돼 있지 않다면? 이런 경우에 가장 공평한 방법은 다 같이 죽는 것이겠지만, 합리적인 방법은 역시나 한명만 죽는 거다. 여기서 다수와 소수의 손익 대결이 발생하는데, 이때 999명이 나머지 한사람을 죽이는 게 좋겠다고 결정했다고 해서, 999명에게 이 사람을 죽일 권리가 부여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나머지 한사람의 생존권이 999명이라는 다수가 취한 다수결의 원칙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한 해결책은 제비뽑기 등의 합의된 방법 하에서 한 사람을 뽑는 것이다.
다수의 폭력으로부터 소수자가 보호되어야 한다는 대단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이야기이다. 대추리 사태를 비롯한 많은 문제들이 개인 대 개인의 구도에서 개인 대 국가의 구도로 옮겨갈 때, 바로 이 당연한 소수자의 권리와 국민으로부터 국가에 위임된 권력 간의 갈등에 대한 오해의 발생과 이로 인한 ‘개인의 권리’ 보호라는 국가의 기본적인 기능 마비에 기인한다. 국가권력은 ‘다수의 이익’이란 이름으로 휘두를 수 있는 절대권력이 아니다. 위의 예를 들자면, 갑,을,병에게 정이 먼저 자리잡은 자리를 박탈할 권리가 없고, 999명의 승객에게 나머지 한 사람의 생존을 결정할 권리가 없다면, 국가 또한 정의 좌석권(?)이나 한사람의 생존권을 박탈할 수 없어야 한다.
물론, 행정권, 입법권, 사법권의 삼권 등 국민 개개인이 행사할 수 없는 국가권력이 있다. 이것이 앞서 말한 합의된 방법에 따라 위임된 권위로 이 권위는 개인 대 개인 혹은 집단 대 집단 간의 갈등의 조율을 보다 효율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도구로, 앞서 든 예에서 선착순 좌석제나 제비뽑기 등의 제도를 마련하는 데에 사용되는 권한일 뿐이다.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돌아가는 민주주의체제에서 다수는 다수이기 때문에 이미 소수보다 많은 권리를 확보하고 있고, 그만큼 소수의 권리는 짓밟히기 쉽다. 그래서 국가는 삼권의 집행 과정에서 다수의 횡포로부터 소수가 정당한 보호를 받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확인해야 한다. 어차피 모든 국민에게 이로운 제도란 없다. 보다 많은 사람에게 이로운 제도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999명이 의견을 모아 나머지 한 사람의 찬성 없이 그사람을 죽일 수 없듯이, 국가 역시 소수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고 강요할 수는 없고, 국가 안보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대추리 주민들을 대추리에서 쫓아낼 수 없다. 설령 미군기지이전의 필요성에 대다수의 국민이 동의하더라도 국가는 국민 다수의 대리자 또는 청부자로서 대추리 주민들을 설득할 의무만이 있다.
국가 권력의 한계는 단순하다. 다수의 국민이 누릴 수 없는 소수자를 탄압할 권리를 국가가 누릴 수는 없다.
@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글.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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