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본주의 체제가 우리에게 주입시키는 가장 위험한 생각 중 하나는 ‘노력하면 성공주한다’는 의식이다.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표현한, 언뜻 보기에 대단히 고상한 저 선언문은 실제로는 그다지 고상하지 않다.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댓가’는 자본주의가 철저하게 지향하는 바일 수는 있지만, 현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실현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현실 자본주의에서ㅡ항상이라면 대단히 좋겠지만 대단히 불행히도 항상은 아니고ㅡ그나마 참이랄만한 명제는 ‘성공한 사람은 노력을 한다’라는 명제다. (이 명제의 대우를 취해보면,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성공하지 못한다’로 사람들에게 열심히 살아갈 것을 주장하는 매우 의미있는 한마디이기도 하다.)
5)와 6)이 그게 그 이야기라고 쉽게 생각하는 우리는 ‘성공한 사람은 노력을 한다’라는 참인 명제와 그 명제의 역명제인 ‘노력한 사람은 성공한다’를 동치로 놓고 후자를 참으로 받아들이는 우 또한 쉽게 범한다. 뭐, 어차피 그게 그말 같이 느껴지면 그게 그거지 미세한 논리학적 구분이 큰 의미가 있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차이는 사회적으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노력한 사람은 성공한다’는 명제를 참으로 받아들일 경우 자연스럽게 그 대우명제인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노력하지 않는(았)다’를 참으로 인정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은 사람이다’는 인과응보적 인식은 개개인의 실패에 대한 모든 책임을 그 개개인에게로 돌리게 하고, 결국 결과적으로 사회적 약자가 된 이들에 대한 동정심을 가지 않게 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차별화를 통해 개개인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끝에는ㅡ다양한 단계의ㅡ성공과 실패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떤 형태로든 그 차이를 가를 때에만 의미가 있는 체제 하에서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명제가 제시하는 ‘만인에게 열린 가능성’은 끝끝내 참일 수 없다. 바꿔 말하면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다’는 명제 또한 결코 참일 수 없다. 또 한번 바꿔말하면, 자본주의는 태생적으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하는 사람’을 생산한다.
내말을 오해마시라. 모든 실패한 사람이 노력을 열심히 했음에도 실패했다는 게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노력하지 않아서 실패한 사람들도 틀림없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닌 사회 시스템이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하는 사람을 만들어낸다면,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무조건 개인에게 돌림으로써 이 체제 하에서 소외된 그들에게서 등돌리는 것은 대단히 비열한 짓이다.
나만큼 때로는 나보다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나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많다. 내 성공이 내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댓가라고 해서, 남의 실패가 반드시 그들의 게으름에 대한 정당한 댓가는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왜 그들은 그들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못 받았는지 고민해야 하고, 왜 나는 그들이 받지 못한 것을 받았는지 고민해야 하며, 소외된 그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감과 연대감을 가져야 한다.
주: 여기서 ‘성공’이라 함은 단순히 자본주의적 가치 기준에서 ‘성공’, 즉 자본의 획득과 이를 통한 풍요로운 의식주를 누리는 것을 말함. 이 기준의 불합리성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지만 일단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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