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소수에 대한 폭력
May 6, 2006
· Filed under 뉴스데스크, 쥔장머릿속
다른 게시판에서 토론하며 쓴 글. 아래 글과 비슷한 논지인데 긴 글 쓴 김에 여기에도 퍼다 놓는다.
bach님, reiny님 답변 감사드립니다. 두분이 제 입장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기보다는, 약간의 기본적인 입장 차이가 있는 듯하지만 아주 약간의 오해의 소지라도 남아있다면 이를 제거하는 게 보다 건전한 토론에 도움이 될 거라 판단하여 제 입장을 조금 더 분명히 밝혀볼까 합니다.
bach님이 말씀대로 현행 헌법과 법률에 따르면 대추리 수용 결정은 정부가 누릴 수 있는 권한 중 하나입니다만, 제가 문제제기를 하고 싶은 부분은 보다 근본적으로 공공의 이익 vs 소수의 권한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이 정당한 방법인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앞선 글에서도 예를 하나 들었는데, 이번에도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사람 100명을 태운 배가 운항중에 어떤 이유에서든 가라 앉기 시작했습니다. 배에는 10인승 구명보트가 하나밖에 없는데 대단히 다행히도 이 구명보트와 성인 9-10명 정도의 무게를 덜고나면 배가 더 이상 가라앉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구명보트에 탄 사람들은 남은 목적지까지 노를 저어 가야하는 대단히 고생스러운 입장에 처합니다. 이때 구명보트에 타겠다는 지원자가 10명이 있다면 문제는 대단히 간단합니다. 그런데 지원자가 없다면? 공평하게 제비뽑기를 해도 되겠고, 지원자에게는 목적지에 도착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좋은 숙식시설을 제공하겠다는 조건으로 지원자를 찾아도 되겠죠.
그런데 이래도 지원자가 없다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다 승객 90명이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생겼는데 이 사람들이 나머지 10명을 그냥 구명보트에 태우고는 나중에 목적지에 도착해서 좋은 대접을 해주기기로 결정했다고 합시다. 그때 이 10명은 ‘공공의 이익’이라는 이유로 90명의 결정에 그냥 따라야 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10명도 나머지 90명과 마찬가지의 선택권ㅡ배를 타고 편하게 목적지에 갈 것인가, 구명보트를 타고 고생스럽게 목적지에 도착해서 조금 나은 대접을 받을 것인가의 선택권ㅡ이 있어야 하고 이는 공공의 이익이라는 이름으로 박탈당해서는 안 됩니다. 90명의 사람들이 계속해서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할 수는 있겠지만 이 10명이 끝끝내 배를 타고 편하게 여행하는 것이 목적지 도착 후의 어떤 특혜보다 낫다고 판단한다면 90명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준에서는 ‘아니, 왜 이런 좋은 조건을 마다하는 거야?’라는 의아한 생각이 들더라도 이 생각을 10명에게 강요할 수 는 없습니다. 90명이 10명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데에는 ‘그 이외에는 어떤 방법도 없을’ 정도의 절박한 상황에서만 가능해야 합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건데 왜 거부하느냐’며 이들을 이기적인 사람들로 몰아붙여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따지고 보면 이 90명의 사람들도 자기가 선뜻 구명보트에 탈 의향은 없으면서 자신들이 선택한 10사람에 대해서만 자신들보다 높은 수준의 희생정신을 강요하며 그에 응하지 않는 것을 이기적이라고 하는 것은 부당하니까요.
소수의 사람들이 다수의 행복이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희생할 각오가 돼 있다면 그 희생정신은 대단히 숭고한 정신이고 다수는 이에 감사해야 하지만, 그럴 각오가 없다고 해서 그들이 이기적인 사람들은 아닙니다. ‘미군기지가 국가안보에 중요하지. 그래, 국가를 위해서라면 내가 손해를 조금 봐도 돼’라며 자기땅을 선뜻 내놓는 사람은 없잖습니까. 대한민국에서 대추리가 미군기지에 들어서기에 ‘유일’하게 적합한 부지는 아니라고 봅니다. 부지에 대한 경제적 고려가 들어가다보니 대추리가 선택된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정말 ‘공공의 이익’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라면 더 비싼 땅에라도 미군기지를 짓기위해 사람들이 세금을 더낼 정도의 자기 희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대추리 사람들이 자기땅을 떠나지 않으려는 걸 비난하는 게 정당한지 모르겠습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소수의 희생이 필요한 상황은 얼마든지 펼쳐집니다. 그렇지만 그 희생은 그 희생을 하는 소수자들의 자발적 희생이어야지, 다수가 ‘우리 모두를 위해서 지금 너희들의 희생이 필요해’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 희생에 대한 보상을 해주겠다고 하더라도 그 희생과 보상 간의 저울질은 철저하게 그 소수자들의 몫이지, 다수가 ‘겨우 그 정도 희생에 이정도 보상이면 충분하지’라며 그 결정을 ‘대신’내려주는 것이야 말로 인권침해이며,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일인데’라며 소수의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떤 희생이 그토록 당연하다면 그 희생은 그 희생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다른 사람의 희생이 당연하다고 믿는 것, 그게 바로 다수의 소수에 대한 폭력입니다.
본글의 일부/전체를 필자 동의/허락없이 멋대로 인용이나 전재해 주십시오, 제발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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