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제20일 결산
제1경기: 독일 vs 아르헨티나
독일은 16강전 이후 컨디션 조절에 약간 애를 먹었는지ㅡ 뭐, 한달짜리 대회에서 컨디션 기복이야 있는 거야 놀라울 게 없는 일이긴 하지ㅡ그간의 날카로운 모습이 아닌 독일, 승부차기 끝에 아르헨티나를 꺾고 4강 진출. 폴란드 전을 제외하고는 항상 경기 초반에 선제골로 상대를 제압해버린 독일이 상당히 경계가 됐는지 아르헨티나는 경기 초반에 강력한 압박으로 독일의 리듬을 깬다. 농구로 이야기하자면 풀코트 프레스에 가까운 전방부터의 압박에 독일이 공을 쉽게 뺏기며 상당히 고전.
16강전에서 연장까지 가야했던 아르헨티나가 저런 페이스를 90분 내내 유지할 수는 없다고 봤을 때, 아르헨티나 체력이 떨어지는 시점에서 승부의 고비가 오겠거니 했는데, 독일에는 상당히 운이 따른, 아르헨티나에게는 대단히 불행스러운 상황이 후반 70분경에 펼쳐진다. 아르헨티나 주전 골키퍼 Abbondanzieri가 부상으로 교체된 것. 이와 동시에 Pekerman 감독이 다소 의외의 선수 기용을 하는데 Riquelme를 빼고 Cambiasso를 투입한 것. 아마도 두경기 연속 연장전을 가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부담스러운데, 교체 카드 중 한장을 소비한 상태에서는 더더욱 그리고 싶지 않은 시나리오라 한골을 지켜야겠다는 의중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지만 Riquelme가 빠지면서 공을 효과적으로 전진시키는데 실패한 아르헨티나는 이후 10여분간 상당한 수세에 몰리고, 결국은 동점골을 허용, 결과적으로는 나쁜 선택이 됐다. 와중에 실점 직전에 Crespo 대신에 J. Cruz를 투입하면서 교체 세장을 모두 사용한 상태에서 먹은 동점골이라 더더욱 뼈아픈 골. Messi와 Saviola는 모두 벤치에 남아 있고, Riquelme는 교체돼 나온 상황에서 연장전을 치뤄야 하는데, J. Cruz는 다소 정적인 타겟맨이라 결국 공격 전개의 부담이 Tevez 한명에게 쏠리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또 한번 예상치 않았던 방향으로 경기가 진행되는데, 연장전 들어서 지난 경기에서 이미 연장 혈투를 벌였던 아르헨티나보다 독일이 더 심한 체력 저하를 보였다는 점. 특히나 부상을 안고 뛰던 Ballack은 거의 없이 뛰었다고 보면 될 정도. 그렇다고는 해도 아르헨티나가 특유의 공격의 날카로움을 갖지 못한 상황이라 연장전은 무득점으로 승부차기로 넘어간다.
역대 월드컵에서 유이한 승부차기 무패의 양팀간의 대결은 Lehman 골키퍼가 선방한 독일의 승리. 아르헨티나의 Franco 키퍼는 억수로 나쁜 타이밍에 경기에 투입돼 동점골 허용하고, 승부차기에 대한 부담감만 만빵으로 경험해보고 말았다, 안습.
아무튼 양팀다 썩 컨디션 좋은 모습이 아니었지만 굳이 한팀을 고르라면 아르헨티나가 조금 더 좋은 경기 내용을 보였지만, 컨디션 구린 날에 이기는 것도 실력이다. 그게 약간의 홈팀 어드밴티지를 등에 업었기 때문이라면, 약간의 홈팀 어드밴티지도 실력인 거다. 월드컵이란 다 그런 거지. ㅡㅠㅡ
제2경기: 우크라이나 vs 이탈리아
수비 조직이 완전히 와해된 우크라이나의 완패. Vorobey가 Shevchenko의 파트너로 나서리라 예상됐는데 21살의 Milevskiy가 선발 출장, 이탈리아 수비수들의 집요하고 끈질긴 몸싸움에 혈기를 누르지 못하고 성질만 내다가 72분에 Belik과 교체돼 나가면서 Blokhin 감독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사실 이 경기는 이탈리아가 전반 6분만에 선제골을 올렸을 때 승부가 절반은 갈렸다. 수비에 많은 머릿수를 두면서 Shevchenko와 Voronin 두 공격수의 재능에 철저히 의존하는 공격을 펼치는데에 길들여진 우크라이나로서는 경기 초반에 첫골을 내주면서, 끈기있게 기다리면서 상대가 헛점을 보이기를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는 상황. 특히 상대야말로 끈기있는 수비와 날카로운 역습을 자랑으로 삼는 이탈리아일 경우에는 더더욱. 결국 경기 초반에 수비수인 Sviderskyi를 빼고 Vorobey를 투입하며 보다 공격적인 축구를 하기 위한 전술적 변화를 줬지만 수비 조직력에 헛점만 드러내며 상대 역습에 번번히 무너졌다.
두번째 골을 내주기 직전에 잡은 동점 찬스를 Buffon의 선방과 Zambrotta의 선방으로 놓친 것이 경기의 승부령. 위기 뒤에 찬스라고, 그 직후에 Toni가 (약간 오프사이드성의) 추가골을 성공시키면서 승부의 추는 이미 기울었다고 보면 되겠다. 2:0으로 앞서자 Pirlo와 Camoranesi를 빼며 4강을 대비하는 선수교체를 단행한 Lippi 감독도 그 시점에서 승부가 갈렸다고 본 듯. 뭐, 처녀출전에 8강까지 간 우크라이나가 선전한 건 사실이지만 5경기 중 대 사우디 전 달랑 한경기 선전해서 8강까지 갔다고 생각하면 꽤나 운도 많이 따라준 건 사실인만큼 Shevchenko가 은퇴하기 전에 우크라이나를 월드컵 무대에서 다시 볼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쉽지 않아 보인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쉽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