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에 대한 단상
September 14, 2006
· Filed under 쥔장머릿속
어제 이글루스의 한 글이 원인이 돼 이웃 블로거 *로님과 페미니스트 vs 마초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누게 됐다. 자칭 골수 페미니스트이신 *로님의 날이 선 공격(?)에 약간 당황한 자칭 중립적 여성주의자인 주인장, 잠시 머리를 식혀 어제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다시 정리해봤다.
군가산점 vs 국방의 의무
주인장은 속칭 꼴통 페미니스트와 건전한 페미니스트를 가르는 기준으로 몇년전 꽤나 시끄러운 화제가 됐던 군가산점제 논란으로 이용한다. 군가산점제가 문제가 된 것은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불평등한 제도였기 때문이다. 올바른 지적이다. ‘모든 불평등의 제거’를 주장하는 주인장, 군가산점제도 폐지 찬성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럼 군대를 가는 사람들은? 그것도 불평등 아닌가? 그거, 불평등 맞다.
국방의 의무 중 구체적으로 병역의 의무는 신체 건장한 남성만 진다. 실제로 청춘의 2-3년을 땅바닥 기는 거, 꽤나 억울한 일인 게 사실이다. 불평등적 요소가 있다. 주인장도 그게 싫어서 얼른 박사 따서 병역특례할 생각하고 있단 말이다, 하핫. 그러면 ‘모든 불평등의 제거’를 주장하는 주인장, 병역의 의무 제거도 외쳐야 정상이다. 뭐, 외치고 싶긴 한데 군사 매니아가 아닌 주인장, 모병제하에서 대한민국군의 군사력이 필요한 수준을 유지해줄지 전혀 모르는 바 모병제 전향을 쉽게 주장할 수는 없고, 병역의 의무 손질은 생각해볼 수 있다. 모든 여자들이 남자들처럼 다 총매고 땅바닥기기란 불가능하니, 여자들이 할 수 있는 대체 복무의 다양한 형태를 개발해보는 거, 나쁜 일이 아니다.
기득권 놓기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면 또 문제가 생긴다. 이런 주장을 하면 ‘그간 여자들이 억압받고 산 세월이 얼만데, 그리고 그 세월동안 손해본 게 얼만데, 남자들은 군대 갔다 오는 것까지도 여자들한테서 다 챙겨먹을라고 하느냐’고 말한다. 이런 주장에 심정적으로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남자들이 자기들이 가진 기득권 내놓지는 않으면서 먼저 설쳐서 병역 의무 개편을 주장한다면, 이거 도둑놈 심보라고 보는 편이 옳다.
그렇지만 ‘모든 불평등의 제거’를 주장하는 주인장, 여기서 멈춰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호주제도 폐지해야 하고,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아이들이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것에 대한 효과적인 대안이 뭐가 있나도 고민해봐야 하고, 유급 출산휴가제도 확대도 필요하며, 여성이 받는 취직/승진/임금에 있어서의 불평등도 손봐야 하고, 성매매가 은연중에 상징하는 남성 중심의 사회적 틀도 뜯어고쳐야 하고, 폭력가장에 대한 효과적인 처벌법도 필요하며, 격년으로 명절 때마다 남녀 집안을 번갈아 가기도 해야 하고, 집안일을 남자도 해야 한다.
이 모든 거에다가 지금 생각이 안 나지만 이 이외의 수없이 많은 것들을 다 해야 한다. 여자들이 들으면 ‘저렇게 당연한 얘기를 왜 저렇게 비장하게 해?’라고 할 소리, 남자들이 들으면 갑자기 억울한 생각이 막 들 거다. 기득권이란 원래 그런 거다. 워낙에 체화돼 버려서 있을 땐 좋은줄 모르는데 없으면 못 살 거 같다. 그래서 좀처럼 내놓기 어렵다.
좌파의 생명
아무튼 다시 페미니스트를 나누는 기준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속칭 꼴통 페미니스트들의 남성들에 대한 격력한 불신에 대해 주인장이 심정적으로는 통감을 하면서도 그들의 손을 들어줄 수 없는 것은 잣대의 공정성이나 논리적 타당성을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군가산점제도 폐지해야 하고, 호주제도 폐지해야 하고, 유급 출산휴가제도 확대도 해야 하고 등등 모든 걸 다 해야 하는데, 유독 병역 의무 개편에 대해서만은 ‘남자들이 그 동안 여자들을 괴롭혀 온 게 얼만데’라고 말해버린다. 혹은 ‘겨우 그것마저도 여자들한테서 알뜰하게 다 발려 먹으려고 하느냐’며 병역 의무 개편을 주장하는 남자들을 마초로 몰아붙인다.
주인장, 단기적 처방으로서 역차별의 효용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자들이 이만큼 당해왔으니 이제부턴 남자들이 당할 차례다’라는 뉘앙스를 풍기면 그때부턴 ‘어라, 우리 지금 평등해지자는 거 아니었던가?’ 갑자기 속셈이 뭔가 헷갈려진다.
사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여자들이 받는 부당한 대접은 성문화된 제도 이상으로 우리 사회에 뿌리를 깊이 박은 다양한 현상으로서 나타나기 때문에 접근하기 아주 어려운 문제다. (오히려 호주제와 같은 성문화된 제도는 찾기도 쉽고 결과적으로 고치기도 (상대적으로) 쉽다.) 그래서 피해가 더 심각한 게 사실이다. 이런 일은 정말 너무 비일비재하다. 그러고는 ‘남자들은 원래 그렇다’고 넘어간다. 그러면 안 그런 남자들은 남자가 아닌 거냐? ‘남자들은 원래 그렇다’는 주장은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어김없이 그러할 때에만 사용할 수 있는 무기이다. 안 그런 상황에서 저런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건 비겁한 짓이다. 남자가 그런 비겁한 짓을 하면 쓰나? 안 그래?
어쨌든 그러니 여자들은 속이 더 터지고 그간 진 손해를 생각하면 억울해 죽을 지경이다. 그거, 모르는 바 아니다. 그래도 세상을 바꾸는 세력, 소위 좌파의 생명은 도덕성이다. 원래가 똥 묻은 개들은 비겁한 존재인지라 겨 묻은 개 나무라길 좋아하고, 대단히 불행히도 이는 항상 효과적인 방패가 된다. 그래서 자신들에게 자신들이 비판하는 세력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할 때, 털어서 먼지 안 나도록 노력할 때, 똥 묻은 개가 나무랄 빌미를 제공하지 않을 때에 좌파의 운동은 진정 힘을 얻는다.
똥 털기
주인장, 부정하고 싶지만 이 사회가 제공하는 기득권은 죄다 쥐고 있다. 남자고, 몸 불편한 곳 없이 건강하며, 세간의 기준으로 볼 때 교육도 잘 받았고, 가난을 제대로 맛본 적도 없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구면을 기어가는 벌레, 이 벌레는 자신이 무한히 넓은 평면을 기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벌레를 보고 있는 우리는 이 벌레가 주먹만한 공 위를 뱅뱅돌고 있을 뿐임을 안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꿈속에서 우린 가끔 매우 황당한 경험을 한다. 그런데 신기한 건 꿈에서 깨기 전까지는 꿈에서 일어나는 모든 황당하고 기괴한 사건들이 그저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러다가 꿈에서 깨고 나면 그 사건들이 가진 논리성의 결핍에 신기해하고 재밌어 한다. 이는 꿈속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사고의 틀이랑, 속칭 현실 세계에서 갖고 있는 사고의 틀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꿈에서 일어난 일들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시점은 잠에서 깨어난 후, 현실 세계의 사고의 틀에서 꿈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비교할 때이다.
즉, 동일한 사고의 기준이 없다면 어떤 현상에 대한 해석은 재각각일 수 밖에 없다. 남녀뿐만 아니라 모든 불평등 논쟁은 바로 이런 사고의 틀 혹은 기준의 줄다리기이다. 그렇지만 이 줄의 어디쯤이 공정한 기준인지는 정말 알 수 없다. 그저 저기쯤이겠거니 찍어놓고는 그쪽으로 줄을 당길 뿐이다. 그래서 주인장, 본인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남성들은 누구나 마초 혹은 잠재적 마초라고 생각한다. 저기쯤이겠거니 찍어놓은 기준은 꿈에서 깨고 보니 한참 모자란 기준이었을 확률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자들에게 겨까지 털어가며 싸우라고 말하면 ‘가진 놈이 더하다’는 손가락질 당할 수밖에 없고, 주인장은 결국 D마이너스급 좌파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선배의 남자친구가 늘상 하는 이야기를 빌리자면 ‘스스로를 불편하게 옥죄지 않고서는 절대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고, 사회정의가 개인의 불편이나 손해에 우선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인장, 주인장한테 묻은 똥을 남이 나무라기 전에 털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이 묻었다고? 알고 있다.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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